Saturday, 27 October 2012
애플과 방망이 깎던 노인
통 사정을 해도 에누리는 얄짤 없다. 좀 빨리 해달라고 보채도 묵묵부답이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된 것 같은데 이리저리 돌려볼 뿐 시간을 보낸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나온 것을 보고 예쁘다고 야단이다.
코딩하던 노인에서부터 김성모 화백의 깨알같은 패러디가 담긴 삼절곤 깎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활발하게 패러디되고 있는 '방망이 깎는 노인'이다. 그런데 어찌 애플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제품이 쏟아져나오는 전세계 IT트렌드에도 애플은 손님 본위가 아니라 제 본위다. 밤을 새는 기다림 끝에 받아든 신제품을 만져보고 세계의 사용자들은 예쁘다고 야단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의 두배는 괜히 나온게 아니다.
그런데 요즘 애플산 방망이가 조오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iOS6의 Fly Over는 방망이 치고 제대로 다림질을 못하고, iPad Mini는 전대 장인이 절대 금기시했던 스몰사이즈 방망이이며, 이번에 나온다는 iPad 4세대 방망이는 너무 일찍 나온 탓인지 3세대 방망이 유저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잡스라는 희대의 방망이꾼이 물러난 후, 목재 조달의 달인이었던 쿡이 방망이 장인 자리에 올랐다.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어느 정도 잡스의 유산을 통해 방망이가게를 잘 운영해왔지만, 최근의 행보는 잡스표 방망이에서 멀어지고 있는 양상을 띈다.
잡스빠이자 열렬한 앱등이로서 겪는 인지부조화로 인하여 새롭게 나온 iPad Mini의 공홈 공식 동영상을 아직 보지 못한 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애플의 시장관의 변화라고 본다.
일례로, iPad나 iPhone은 그간 약 1년 정도의 주기로 신제품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 iPad 새 제품은 230일만에 예약판매를 받고 있다. 새 방망이가 나오기까지 좀 시간이 있을거라며 안도하던 3세대 유저들을 벙찌게 만든 출시소식이다. 일시적인 변동일 수 있으나, 그동안 관례로 지켜져오던 방망이 출시 사이클을 파격적으로 단축시켰다는 점에서 애플은 그간 공고히 쌓아오던 신뢰도와 제품 이미지에 타격을 받게 생겼다. 또한 이 전략적 행보는 애플이 타 방망이 가게 전략을 모방하는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심히 우려스럽다.
손님 본위가 아닌 제 본위로 제품을 만들어왔던 애플은 언제나 시장이 자신들을 쫓아오게 만들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게 하면서 새 방망이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고, 만들어진 방망이는 대부분의 경우 기대를 뛰어넘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해 깎여진 방망이는 사용자들로부터 야단스러운 칭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제 2대 장인 휘하의 애플은 시장을 쫒으려는 발걸음을 떼고 있다. 제 본위가 아니라 손님 본위로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려 하고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예전같으면 있을 수 없는 iPad Mini는 사람들이 원하니까, 또는 옆집 삼성, 구글, 아마존 가게에 만드니까 나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넉달 정도 일찍 나온 iPad 4세대는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하려는 애플의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장에 발빠르게 대응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는 있으나, 지금껏 강력하게 구축해왔던 장인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방망이를 애용하는 한 유저로서 최근의 이러한 애플의 행보는 너무나 안타깝다. 에누리엔 얄짤없는 깐깐한 태도가 가끔 밉기는 하지만, 특유의 슈퍼 갑 정신으로 무장한 꼬장꼬장한 장인의 방망이 가게가 다양한 스타일의 방망이를 전시해 놓은 덩치 큰 옆동네 방망이가게를 따라가려 한다는 모양새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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