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31 October 2012

혁신과 중용


혁신과 중용

요즘 나 자신이 정보소비에 중독되었음을 느낀다. 잠시라도 무엇을 읽지 않거나 하지 않으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눈이 뻑뻑하여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싶어도,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눈이 떠지고 만다. 여유가 없는걸까 아니면 눈이 이상한 걸까.

오랜만에 징글벨을 한판 연습하고 간단히 김밥천국에서 요기를 한 후 운동을 가기전에 커피를 하러왔다. 아무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부어도 눈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휴대폰 배터리도 나가고 앉았던 자리엔 콘센트도 없다. 잠깐 딴 생각을 좀 해봤다.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공부하는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주변 친구들의 영향인지 헛바람인지 혁신, 브랜딩, 디자인 등에 많은 관심이 갔다. 특히 한때 많은 생각을 했던 부분은 혁신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애플이나 구글처럼 혁신을 통해 세상을 제패한 기업들을 보며, 왜 우리는 비슷한 기업이 있을 수 없을까. 왜 혁신은 발생하며 어떻게 성공적이고 실용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그러다 오늘은 좀 말도 안되는 철학과 관련된 생각을 좀 해봤다.

혁신이란, 어떤 책에서 읽은 내 맘에 드는 쏙 드는 말을 통해 설명하자면, pushing the boundary다. 어떤 것의 경계를 끊임없이 밀어내는 것. 경계에서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능성을 개척해나가는 것. 극단적이다. 마케팅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사이먼 시넥의 law of diffusion of innovation에서 새로운 기술은 소수의 얼리어답터로부터 먼저 입소문을 탄다. 그러다가 16%의 tipping point를 넘는 순간 대세가 되고 세상을 바꾼다. 역시 극단적인 소수다.

왜 서양, 그리고 일본에서는 근대에 들어 혁신이 많이 나왔을까. 부정적인 면도 물론 많지만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미지의 바다에 목숨을 내던지는 것. 잡다한 것을 다 쳐내고 본질만을 유지하려는 젠 사상. 어떤 것의 극단을 추구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문화적인 배경이 있어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반대로 '중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며 중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음을 밝힌다)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딱 적정하게만. 개발논리로 너무 바쁘게만 살아온 우리에게 큰 정신적인 교훈을 전해주는 철학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극단을 추구하지 않음으로 인해 개선이나 혁신에는 조금 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중용은 자연 그대로의 삶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친환경적일지는 몰라도 그 자연에 대한 극단적인 해석이 없다면 발전이 없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용'에 대한 철학적 식견이 높은 분들의 거침없는 비판을 부탁드린다.

예를 들어, 빛의 파장을 생각해보자. 파장의 중간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이 있다. 딱 적절하다. 색도 다양하고 눈에도 보이고. 그러나 만약 양 극단으로 가서 연구하지 않았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과 자외선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근대 역사,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오랜 역사의 흐름이 지금까지 갈고 닦여지고 보존되어 현대 대한민국의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면, 우리도 우리만의 혁신과 발달을 통해서 뭔가를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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